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와 같은 국가비상상태에서 국가가 독재적으로 행동할 여지가 커지면서 전체주의가 강화될 수 있는 위험성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중앙집권적인 통제가 기술적으로도 가능해진 위기의 시기에, 그의 경고는 자칫 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고 시민의 일상이 감시받고 제재당하는 독재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는 서구 사회의 공포를 대변합니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의 경험은 다소 독특합니다. 국가의 확장과 함께, 시민사회의 힘도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돕고 협력하는 상부상조, 타인의 행위에 대해 보상과 응징을 제공하는 상호감시라는 오랜 공동체 문화가 이번에는 신뢰와 창의적인 협동의 사회적 자본으로 진화하였습니다.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공동의 목표 앞에, 이기적 인간과 이타적 인간 사이의 '상호적 인간'이 혁신적으로 발현된 것입니다.

  하루 아침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국가는 가장 효과적으로 공익을 추구하는 대표자이면서도 동시에 공익을 훼손할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라는, 국가의 양면성에 대해 이미 우리사회는 짧지 않은 역사적 학습을 거쳤습니다.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국가 권력이 끊임없는 감시와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시민사회가 이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성공적인 경험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다소 폐쇄적이었던 시민사회의 공동체 의식도 코로나19를 거치며 한층 성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독거노인과 취약계층, 외국인에게 마스크를 챙겨주고, 성소수자 등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중지하는 것이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길임을 알아갑니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바이러스 감염과 고통이 나와 내 가족의 안전에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공동체의 안전에 대한 열망이 나를 넘어선 타인의 안전에 주목하게 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불편함도 넘어서는 포용의 힘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제 위기 속에 형성된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라는 연대의식,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시민사회의 잠재력을, 일상에서 더욱 성숙한 복지사회의 발전으로 연결할 때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시민사회·학계와 정부가 함께 대응해야만 할 영역도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번의 긴급재난지원금으로는 메워질 수 없는 크고 오랜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어떤 또다른 위기를 맞이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 시민사회와 학계가 깨어있는 주체가 되어 시의적절한 담론을 제시하고 사회혁신에 비판과 창조의 힘을 더해주길 기대해봅니다.

  이번 『한국사회정책』 27권 2호에는 총 9편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먼저 사회정책의 영역을 더욱 확장해주는 세편의 국가비교 연구를 소개합니다. '한국 국가의 조세‧분배 역량의 장기 변동: 복지·조세규모와 조세구조의 이념형적 분석'(신진욱)은 조세와 자원배분을 동시에 다룬 거시적 복지국가 비교연구로서, 재정수입과 지출의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자유주의형과 사회보험형의 성격이 공존하는 혼종형 복지국가로 전환해온 장기적인 변동을 학술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문화정책은 이주아동의 사회통합에 늘 효과적인가?:사회복지지출 규모를 고려한 비교사회정책적 재분석'(양경은·함승환)은 기존의 다문화정책과 이주민 인권, 사회통합에 대한 논의가 담론이나 제도 자체에 치우친 점에 착안하여, OECE 국가를 대상으로 다문화정책의 효과성과 사회복지정책과의 상호작용의 효과성을 검증한 의미있는 논문으로 평가됩니다. 한편 최근 국가간 원조의 규모 확대와 함께 원조에 대한 학술적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수원국 경제발전수준에 따른 원조범람이 원조 효과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조문영·이석원)는 원조 효과성의 문제를 사회정책적 시각에서 다루고자 한 비교 연구입니다.

  '고용'은 이번 호에서도 사회정책의 핵심 주제였습니다. '공공부문 정규직 내의 사회적배제: 별정우체국 직원에 대한 사례 연구'(이승준·김주리)는 정규직이면서도 배제를 경험하는 별정우체국 직원의 독특한 상황을 포착하고, 이들의 배제 경험을 질적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규명하고자 한 시도로서 학문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불안정 노동자의 노후소득보장: 연금유형에 따른 불안정 노동자의 연금소득 시뮬레이션 분석'(김윤영)은 한국 불안정 노동자의 특성을 이용해 세 연금체계에서 불안정 노동자의 연금소득을 추정하여 연금체계를 비교하고 연금개혁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사회정책적 함의를 제공해줍니다. '한국 지역고용정책 유형화와 그 유형별 특성 비교 : 16개 시도 정책을 중심으로'(이상아)는 한국 지역고용정책의 다양한 수준에 주목하고, 이를 정책대상의 포괄성, 정책 프로그램의 적극성, 정책 재원의 독립성이라는 세 차원에 따라 분석하여 학술적으로 유의한 유형화를 시도한 연구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책적 시사점이 큰 세 편의 연구도 소개합니다. 급격한 돌봄 수요의 증대에 대응하고 질 높은 서비스를 담보하기 위해서 인력관리 측면에서 요양보호사의 근로여건의 연구필요성이 높은 상황에서, '행정자료를 활용한 장기요양 입소시설 요양보호사의 근속 영향요인 연구'(이희승·이정석·박영우)는 행정자료를 활용하여 설문조사 자료에 비해 객관성이 높고 연구결과를 일반화하기 용이한 시의적절한 분석결과를 제시했습니다. '근로빈곤노인의 빈곤지속기간과 빈곤탈출에 대한 연구: 노인일자리사업에 주는 함의'(지은정)에서는 노인 근로빈곤의 빈곤지속기간과 동태적 분석을 통해 현 정부의 노인일자리 사업의 실효성과 정책 효과를 평가한 시의적절한 논의로서 정책적 시사점이 큰 연구로 평가됩니다. '기로에선 보편주의 의료제도: 캐나다 메디케어의 민영화 추세에 대한 평가'(조영훈)는 2005년 쇼위판결이 캐나다의 의료민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함으로써 한국의 건강보험 개혁에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출간이 이루어지기까지, 심사자의 전문적인 조언을 통해 논문이 더욱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 때로는 연구자와 심사자간에 팽팽한 학술적 비판과 답변이 오가는 숨겨진 공간을 아는 것도 편집인으로서 누리는 값진 경험입니다. 학술적인 절차 속에서 가감없이 비판하되, 때로는 나와 다른 입장일지라도 합리적인 과학적 절차를 충실히 따른 연구를 존중할 줄 아는, 무기명의 전문적인 상호작용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요.

2020. 6. 30
한국사회정책 편집위원장 김수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