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책을 공부하는 연구자라면 앞으로 혹독한 논쟁과 검증을 각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시대는 지난 40년 보다 더 혹독한 시련의 시대가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당분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둘러싸고 끝도 없는 논쟁이 벌어질 것 같으니까요. 낡은 것은 생명을 다했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그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미-중 패권경쟁을 보면서 어렴풋하게 새로운 전환을 보고 계셨을지도 모르고 기본소득 논쟁을 보면서 그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기본소득 논쟁이 시작되면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기존의 담론과 경로를 수호하는 사람처럼 비추어지는 낯선 현실이 펼쳐지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곳곳에서 새로운 논쟁들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이제 모두 케인스주의자들이다(We are all Keynesians now).”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케인스주의가 세계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되면서 보수주의자들조차 케인스주의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닉슨은 경제위기에 직면해 대규모 부양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닉슨의 이야기는 전문가들이라고 자처하는 우리조차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가능성의 한계” 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물론 그렇다고 결정론이나 구조주의에 수긍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주어진 시대의 조건이라는 틀 내에서 살 수밖에 없지만, 그 틀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며, 때로는 그 선택이 큰 차이를 만들기도 합니다. 페르낭 브로델은 기후, 환경 등과 같은 지리적 조건의 규정성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다양성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기후환경과 같은 지리적 조건조차 인간의 창조적이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시대를 규정하는 담론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를 규정했던 한 시대가 저물고 다른 시대가 열리는 여명의 시대에 서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풀기에는 우리가 익숙한 개념과 도구는 너무 낡았고 새로운 개념과 도구는 여의치 않으니까요.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저는 우리 사회정책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0년 간 사회정책을 옭아매던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균형재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담론이 그 유용성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변화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에 직면해 G20 국가들이 취했던 확장적 재정정책은 세계 자본주의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중요한 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토론토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정상들은 돌연 긴축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10년 간 긴 침체와 불평등이 심각해지는 현실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끝이 보입니다.

  우리를 침체와 불평등으로 이끌었던 그 신자유주의라는 프레임이 코로나19 팬데믹에 직면해 생명을 다한 것 같으니까요. 2020년 10월에 개최된 IMF와 세계은행의 연례회동에서 지난 40년 간 국가의 역할을 제약하고 국가의 힘을 분산시키는 신자유주의를 강요했던 그 IMF와 세계은행이 긴축의 폐기를 실질적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2020년 초만 해도 이런 주장을 하면 여러 사람들이 근거가 없다고 수긍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제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이 어떤 세상을 만들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전환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장을 갈망하는 주류의 불가피한 조치였으니까요.

  이제 논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히 여겨오던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합니다. 지난 40년 간 우리 모두는 신자유주의자였으니까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신자유주의 프레임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져야 합니다. 근로의무와 연계된 사회정책,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이름으로 복지국가를 약화시켰던 신자유주의 분권 등 당연시 여겼던 수많은 것을 다시 고민하고 재규정하는 작업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다시 과거의 황금시대로 복귀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가 늘 그렇듯이 역사는 우리에게 누구도 가보지 않는 길을 가라고 합니다. 사회정책을 연구하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사회정책학회가 그 길을 여러분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윤홍식
20대 사회정책학회장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