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서초구 방배동 재건축 예정단지에서 발달 장애인 아들을 둔 60대 여성이 생활고 속에 갑작스럽게 숨진 뒤 반년 넘게 방치된 일이 알려졌습니다. 이분의 죽음 이후 발달 장애인 아들은 누구에게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홀로 노숙자로 거리에서 생활해오다가 발견되었습니다. 방배동 모자사건으로 불려지는 이 안타까운 사건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채 자살이나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송파세모녀(2014년), 증평모녀(2018년), 북한이탈주민 모자(2019년) 등에 이어 우리 사회에 또한번 경종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복지 사각지대의 일차적인 문제는 생활고에 여전히 잘 대응하지 못하는 정책상의 문제와, 이번에 반년 넘게 방치된 고독사로 드러난 위기발굴시스템의 한계일 것입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어려운 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안전망의 문턱을 낮추고, 위기발굴시스템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과 자동 시스템만으로는 절반의 해결에 불과합니다. 취약계층을 더 깊이 관심가지고 살필 수 있도록 현장의 복지 인력을 확충해서 사례관리를 강화하고, 정책 지원시 가정방문의 동의를 구해 필요한 생활 지원을 제공하는, ‘현장 속의 사회서비스 강화’가 함께 가야 합니다.

  정책과 시스템의 탓으로만 비극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정책을 통해 동사무소에는 방배동 모자가구에 대한 수십회의 상담기록이 남아있었지만, 자기의 상황을 알리기를 극도로 회피한 어머니에게 좀더 마음으로 다가가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 상담은 결과적으로 제공되지 못했습니다. 고지서가 수북하게 쌓이고 택배로 배달된 공적 마스크가 문앞에 몇 달동안 방치되었지만 누구도 문제를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아들은 몇 달동안 길에서 노숙하며 엄마의 죽음을 알리고 싶어했지만 하루에도 수천명의 사람이 그 앞을 그저 종종 걸음으로 바쁘게 지나쳤을 뿐입니다. 복지관 직원도, 동사무소 공무원도 아닌 어느 직장에도 소속되지 않은 한 사회복지사가 그의 위험을 알아보고 말을 건네고, 한달동안 신뢰를 쌓고, 식당에 데려가 따뜻한 밥한끼를 대접한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이 모자의 소외되고 고단한 삶의 전말이 뒤늦게나마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한 사회복지사의 깊은 시선이 오랫동안 감춰진 문제를 발견하는 단초가 되었듯, 연구자의 시선이 어디에 어떻게 머무는가가 중요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연구자는 사회현상과 문제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시하고, 사회가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정책>은 연구자의 시선을 통해 문제를 조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회실천의 첫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호에 실린 다섯편의 연구 논문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현상들을 정확한 문제의식을 시의적절하게 제기하면서, 후속연구를 촉발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이론적, 정책적 함의를 제안해주고 있습니다. “사회서비스원은 공공성을 강화하는가?: 사회서비스원 시범사업 초기성과 분석”(양난주)은 이론적으로는 통합적 공공성 개념을 통해 공공성 논의를 개념적으로 잘 정리해내고 체계적인 분석 차원으로 연결하여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여를, 실천적으로는 최근 추진되고 있는 사회서비스원의 성과와 가능성을 공공성이라는 정책 목표에 비춰 진단하는 시의적절한 연구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연구는 향후 공공성과 사회서비스원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경험적 검증을 촉발시키고 공공성의 실천전략을 개발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청년기 여성의 일자리 안정성에 대한 코호트 비교분석”(장지연)은 여성의 노동시장 안정성의 변화를 코호트 분석을 통해 추적한 연구로서, 문제의식에서나 방법론적으로 최근 여성과 관련된 노동시장 이슈를 정확하게 포착한 연구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성별직종분리, 노동시장이중구조 등 노동의 성별격차를 설명하는 전통적 이론과 실증연구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연구에 담고 있어, 변화한 사회환경에서 노동시장의 성별분절 등 노동의 성별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취업과 실업의 사이에서: 청년이직에 대한 질적 연구”(김규혜·이승윤·박성준)는 기존의 실업과 취업의 구분과 그에 따른 정책이 현재 청년의 노동시장 참여에서의 문제를 드러내지 못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청년 노동의 문제를 ‘이직’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청년이직의 의미를 청년 노동자의 경험에 대한 정성 분석을 통해 확장된 시각에서 고찰했다는 점에서 독창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변화하는 청년정책환경 속에서 소득보장정책과 생애경력관점에서 직업훈련정책의 필요성을 다뤘다는 점에서 정책적 함의가 있습니다.

  “능력 있는 아내는 일을 덜 할까?: 부부 성 역할 규범과 상대임금”(윤미례·김태일)는 우리 사회에서 성 역할 규범과 태도가 부부의 상대임금, 특히 남편 임금을 의식한 아내의 임금선택 등 기혼여성의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입니다. 성역할규범에 의한 제약이라는 관점에서 남편보다 많이 버는 아내들이 그렇지 않은 아내들에 비해 본인의 잠재소득보다 덜 벌거나 노동시장 참여를 덜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남편 소득을 추월하는 시점에서 가사노동시간을 늘리는 경향이 있는 등의 흥미로운 현상들을 실증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득차등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정치과정 분석: 본인부담상한제를 중심으로"(손연우·최선영)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주요한 정책수단 중 하나인 본인부담상한제의 정책적 변화를 대상으로 정치과정을 분석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는 보장성 강화 정책의 정치과정에 대해 정치행위자의 역할을 중심으로 제도화 압력과 변화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향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정치전략 마련에 함의를 주고 있습니다.

  이번 27권 4호에는 책도 소개자도 눈에 띌만한 두편의 서평이 게재되었습니다. 이정우 교수님이 토마 피케티(2019)의 『자본과 이데올로기』(Capital and ideology)를, 유종성 교수님이 『21세기 한국의 불평등: 급변하는 시장과 가족, 지체된 사회정책』 (구인회, 2019)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추천과 논의를 거쳐 사회정책 연구자들이 일독할만한 좋은 책을 선정하고, 가장 적확하게 소개해주실 학계의 저명한 학자들께 서평을 의뢰하는 어려운 역할을 기꺼이 맡아주신 김영순 서평위원장님의 수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극복을 위해 자발적 자가격리를 실천하는 차분한 겨울, 차가운 사각지대에서 조용히 외롭게 죽어간 분들을 마음깊이 추모하며, 2021년에 합리적인 제도와 따뜻한 실천을 통해 신뢰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사회정책 편집위원장 김수완